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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SUNDAY SERMON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

고전 15:16~20

안녕하세요. 성도들이 모여서 2019년 부활주일예배를 주님 앞에 드립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들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 신앙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의 말씀에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의 믿음이 헛된 것이고, 우리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가진 우리는 사망과 죄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사망과 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의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망과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망과 죄의 권세를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사망과 죄의 권세를 깨트려야만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사망과 죄의 권세를 깨트리는 부활은 이처럼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역이며,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오직 생명을 창조하신 분만이 죽음에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게 승리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망과 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의 죄와 사망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와 사망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에 우리 역시 사망과 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들에겐 이렇게 소중한 부활이 오늘날도 그렇지만 바울이 선교를 다니던 2천년전에도 역시 믿지 않는 자들에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심지어 오늘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12절 말씀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라고 책망을 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는데도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엔 주님의 부활을 본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의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아무리 봐도 내 경험상 이건 절대로 불가능이여, 동서고금의 지식을 총동원해도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난 법이 없어.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확신하였겠지요. 이처럼 부활을 믿지 않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바울은 오늘 본문을 기록하였습니다. 아울러 부활을 믿지 않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향하여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주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이 없지만 그러나 예루살렘과 안디옥과 수많은 교회 안에서 보면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지금 태반이나 살아있다고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8절 말씀을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들었기에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먼저 부활의 증인들을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주님의 부활을 직접 본 증인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이나 오늘날의 사람들이나 부활의 증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부활을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이 지금도 우리들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는데요. 주님의 부활을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연 주님의 부활은 거짓된 것이거나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내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불가능하거나 거짓된 것일까? 답을 찾는 겁니다.

 

우리들 주변엔 참 많은 소리들이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함께한 찬양소리, 기도소리, 새소리, 자동차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늘 익숙하게 듣는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 성도들의 웃음소리 등 참 많습니다. 이 소리들을 들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인지를 우린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전화벨 소리야, 빨리 전화받아야해 그리곤 셀폰을 들어서 통화버튼을 누릅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린 우리 귀로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습니까? 우리 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가요? 다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안깝게도 다 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소리들 가운데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한정되어있습니다. 이것을 가청음역대라고 하는데요. 가청음역대란 말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있고 그것을 가청음역대라고 부른다는 말이며 이 가청음역대를 넘어서는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가청음역대를 넘어서는 소리의 진동인 주파수를 초음파라고 합니다. 초음파는 가청음역대를 넘어서기에 우리가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초음파가 없는가요? 여러분 시월드에 가서 돌고래 쇼를 본 적이 있으시죠? 저도 아이들 데리고 가서 본 적이 있는데요. 돌고래쇼를 보면 조련사들이 입에 무얼 물고 있습니다. 호각입니다. 그런데 돌고래 쇼에서 조련사들이 호각을 부는 소리를 들어보신 분 계십니까? 없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폼으로 호각을 물고만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실제로 호각을 사용합니다. 조련사들이 호각을 불면 신기하게도 돌고래들이 호각소리에 따라서 움직이고, 바닷속을 헤엄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호각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까요? 그건 조련사들이 부는 호각은 초음파를 내는 특수한 호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호각 소리를 들을 수가 없지만 돌고래는 호각소리를 듣고 헤엄을 칩니다. 돌고래는 초음파로 서로 소리를 주고 받지만 우린 그 소리를 도저히 들을 수가 없습니다. 박쥐들도 초음파를 사용하지만 우린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이지만 그러나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말씀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들의 경험과 지식에 의해서 다 관찰되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지식과 경험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된 세상을 살더라도 여전히 우리들의 경험과 지식을 넘어서는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다 밝힐 수 있고,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건 교만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이루신 부활을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담으려고 하는 것 역시 우리들의 교만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엔 분명히 맞는 말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지금은 틀렸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 많지요? 예전 친구가 한 날은 등산을 갔다고 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어느 절의 승려의 차를 얻어 탔답니다. 그 차에 내비게이션이란 것이 장착되어 있었답니다. 지금 근 30년이 되었으니 당시 처음 보는 네비게이션이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얼마나 신기했는지 친구가 저에게 설명해줍니다. 이 내비게이션이 말이야 인공위성의 신호를 받아서 차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는데 말이야. 인공위성이 차가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가면 입력한 곳에 도착할 수 있는지 상세하게 어드바이스를 했답니다. 30년전입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이 친구가 없는 말을 지어낸다고 생각했지요. 이 친구가 007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차가 달리다 잠수함이 되어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하는 007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했습니다. 달리는 차가 그것도 일반 승용차가 무슨 인공위성의 신호를 받는지, 인공위성이 그렇게 할 일이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에 보니 정말 내비게이션이란 것이 있더군요. 분명 그 때는 내 생각이 맞고 친구가 거짓말을 한다고 믿었는데 몇 년이 지나니 그 때의 제 생각이 틀렸더군요.

 

세상에는 우리들의 경험과 지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부활을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습니다. 부활을 보라 우리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보면 당연히 이건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도 합니다. 틀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다 거짓말인가요? 아닙니다. 왜 그런가? 부활은 우리들의 경험과 지식 안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내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불가능하고 거짓말이라고 하는 건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믿음으로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다달을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지식과 경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 기이하고 높아서 자신이 미치지 못한다고 찬양합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내 지식과 경험 안에서 알 수가 없어서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가? 아닙니다. 현명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을 무식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좁은 지식과 경험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언젠가 이 땅을 떠날 때에 하나님이 마련하신 천국을 보게 되면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매여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한탄할 것입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네요.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마지막 날엔 이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믿어야합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은 무식하고 어리석은 믿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신 놀라우신 사랑임을 봐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음을 믿어야합니다.

 

경험과 지식 안에 갇히게 되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이 경험과 지식을 넘어서서 믿음으로 설 때에 주님의 부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봐야합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바울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부활은 오직 믿음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믿음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두 번째는 부활이 주는 은혜입니다.

목회를 하니 장례예배를 집례하거나 드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내는 남은 가족의 아픔은 큽니다. 제 경험으로 보건대 상실의 아픔보다 큰 아픔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울음조차 울지 못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기도 하고, 혹은 상실의 아픔 때문에 몇 주간을 눈물로만 보내는 가족들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아픔을 같이 느끼지만 장례 예배를 드리고 나서 오히려 믿음이 더 돈독하여지는 가정들을 보게됩니다. 부산에서 목회할 때에 한 가정의 남편이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다른 교회 안수집사님이지만 자녀들이 우리 교회에 나와서 저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발인과 입관예배를 집례하였는데요. 평생 시장에서 고생하다가 이제 자신의 가게를 얻고 자녀들 결혼시키고 먹고 살만하니 암이 온 것입니다. 병원에 가셨을 때엔 말기암이었습니다. 그러니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도, 자신들을 어렵게 키워주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녀들의 마음도 너무도 안타까왔습니다. 암으로 고통받는 아버지를 보며 자녀들을 여전도사님께 자주 심방을 부탁하였습니다. 가서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여러달을 고생하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소천하셨습니다. 집사님의 장지까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이 아직도 기억나는 건 합천의 산골짝인데 그 날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흙탕길을 오르내리느라 옷을 완전히 다 흙탕물에 배렸기 때문입니다. 양복 아래 위로 완전히 흙탕물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장례를 치루고 돌아와서 아버지와 남편을 여읜 상실의 아픔을 위로하였는데 이 가정은 영적으로는 힘이 차 있었습니다. 먼저 평생 고생하신 아버지가 남편이 지금 천국에 갔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답니다. 평생 가정을 일구고 자녀들을 길러주신 남편이 그 아름답고 좋은 우리 주님이 계신 천국에 가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자 자신들의 마음도 그렇게 평안하고 좋을 수가 없답니다. 오히려 장례식을 치루고 믿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우리 주님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셔서 믿는자에게 영생을 주신 것처럼 나의 아버지도 영생을 누리며 저 천국에 사시는구나.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계신 곳에 가겠지 하는 믿음이 자녀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고, 주님 계신 천국이 곧 내가 갈 곳임이 믿어지자 세상 사는 것이 감사고 찬양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기쁨은 사망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내게도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보여주시는 큰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이 부활의 놀랍고 큰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전합니다. 이 부활의 큰 은혜야 말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도 함께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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