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주일 말씀 SUNDAY SERMON

낙심하지 마라.

갈 6:6-9

이번 주 텔레비전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화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입니다. 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할만큼 지금 두 나라가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는 중인데요. 최근 중국은 ‘굴기’란 이름으로 중화사상을 전세계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굴기란 말은 우뚝 솟는다는 뜻인데요. 역사굴기를 통해서 고구려마져도 중국의 변방의 국가로 포함시키고, 국방굴기를 통해서 항공모함을 만들고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반도체 굴기를 통해서 5G 통신을 전세계에 중국이 주도로 해나가겠다는 겁니다. 이것을 미국이 인정할 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서 무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무역전쟁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중국의 셀폰과 통신장비를 제조 판매하는 화웨이입니다. 화웨이는 셀폰 회사이기도 하지만 더 유명한 것은 통신장비를 제조해서 판매합니다. 어제 신문에는 화웨이가 무선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연맹과 반도체 회원에서 제외되었답니다. 그리고 미국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답니다. 화웨이란 기업을 고사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이 죽자고 싸우는 것 같지만 정말 죽을 때까지 싸운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겉으로는 싸우지만 테이블 밑으로는 여전히 협상 중입니다. 어느 하나가 죽어야하는 싸움이 아니라 적당한 때에 자기가 얻을 이익을 얻으면 서로 물러나며 타협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보면 셀폰 회사들끼리 싸우고, 자동차 회사들끼리 더 팔기 위해 싸우고, 나라들끼리 영토와 무역으로 싸우고 참 많은 싸움이 있지만 대부분의 싸움은 적당한 때에 물러나고 타협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싸움입니다. 하지만 결코 물러나서는 안되는 싸움도 있습니다. 죄와의 싸움이지요? 히브리서 12장 4절엔 피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합니다. 끝장을 보라는 말입니다. 사단과의 싸움도 그렇습니다. 져서는 안되는 싸움이고 타협해서는 안되는 싸움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우리들에게 이 싸움도 져서는 안되는 싸움이고 결코 타협해서는 안되는 싸움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이란 나라에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그 나라의 노예로 끌려가지요? 비록 나라가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그 나라에 노예로 끌려가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싸움은 져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노예 생활을 아시고, 고통과 어려움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은 져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을 하시며 싸움에서 지지 말고 이기라고 하십니다. 애굽의 노예로 사백여년을 살았습니다. 사백년 노예생활을 하더라도 져서는 안되는 싸움이 있습니다. 바로가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하더라도 절대로 이 싸움은 져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무엇과의 싸움입니까? 예 바로 낙심과의 싸움입니다. 애굽의 노예가 되고, 바벨론의 노예가 되더라도 결코 낙심과의 싸움에서 져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길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었지요? 40일간 그 땅을 정탐하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엔 분명한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 땅은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란 확신을 가지고 오란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란 확신대신 그 땅에 사는 거인인 아낙자손을 보니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와 같다며 낙심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수기 14장 1절에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고 합니다. 민수기 32:9에는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을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낙심대로 정탐꾼들이 정탐한 40일을 40년으로 해서 광야길 40년을 보내게 하시고 20살 이상의 장정들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외엔 다 광야길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를 우리는 압니다. 어떤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에게 한 과부가 가서 자기의 억울한 일을 풀어달라고 합니다. 당연히 불의한 재판관은 무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재판관을 찾아가는 이 과부를 보고는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에게 내어놓고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하기 싫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는데 도대체 당신이 나를 너무도 귀찮게 여겨서 안들어 줄수가 없네. 당신의 억울한 일이 무엇이요 말해 보시오. 라고 합니다. 이 유명한 이야기의 앞에 왜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이유를 말씀하시지요?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할 것을 이 비유로 하신 겁니다. 기도하는 것이 마치 불의한 재판관 앞에 가서 말하는 것 같아도 결코 낙심하지 말아라. 상대가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낙심하면 안됩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절대로 싸워서 조금이라도 져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낙심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좇겨 죽음과 나 사이가 한 자 밖에 되지 않는 고난 가운데 있어도 결코 져서는 안되는 싸움이 바로 낙심과의 싸움입니다. 낙심하는 순간 요셉은 우리가 아는 요셉이 아닙니다. 낙심하는 순간 다윗 역시 우리가 아는 다윗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형편이 요셉과 같이 되더라도, 다윗처럼 힘겨운 순간을 보내더라도 결코 낙심과의 싸움에서 져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물러나서도 안됩니다. 무슨 상황이건 낙심하면 안됩니다. 요셉과 같이 너무도 억울한 일을 당하건, 다윗과 같이 죽음이 바로 눈 앞에 있건 낙심하면 안됩니다.

 

성경에 흐르는 낙심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낙심이란 말에 자신의 삶을 담아서 그 뜻을 풀어냅니다. 낙심이란 히브리어로 “마사스”란 단어인데요. 이 말은 “용해시키다”, “황폐케 하다”란 뜻이 있습니다. 낙심은 우리들의 소망을 용해시켜 없애버립니다. 우리들의 행복과 기쁨을 용해시켜 없앱니다. 낙심하는 순간부터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다운이 되어버리며 황폐케 됩니다. 낙심은 우리들의 몸과 영혼 그리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행복과 소망과 믿음을 황폐케 시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낙심이란 단어의 뜻을 이렇게 사용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라 없는 민족으로 2천년을 전세계에 떠돌아 다녔습니다. 이들이 이 이천년간 싸운 가장 큰 적이 바로 낙심이 아닐까요? 끝까지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나라를 세울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낙심과 싸워서 이겼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700년경부터 전세계로 흩어져가기 시작하였지만 1948년에 다시금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와서 나라를 회복할 수 있었겠지요? 낙심의 히브리어 마사스는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낙심은 “카코스”는 철학적인 의미를 말합니다. 카코스는 “무가치한, 해로운”이라는 뜻입니다. 낙심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리하여서 단정합니다. 낙심이란 것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해로운 것이라는 뜻인데요. 마치 몸에 있는 기생충과 같습니다. 전혀 필요 없는 해로운 것이니 잡아서 없애야합니다. 낙심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어떤 상황이건 낙심은 금지입니다.

 

요즈음 유명한 한국의 외식업체 대표인 백종원씨 아시지요? 이분은 음식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공하기까지 여러번 실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낙심하지 않고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실패의 경험은 이렇게 다음번 도전에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실패의 경험도 중요합니다. 실패를 경험하였기에 실수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넘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실패에서도 배울 게 있지만 그러나 낙심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낙심에서 배우는 건 낙심하면 안된다는 것 하나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걸 한국 말로 백해무익입니다. 백가지 해로운데 유익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새롭게 해야할 일에 경험적인 도움을 얻거나, 혹은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게 아닙니다. 정말 기생충처럼 없어져야합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 키이츠는 `낙심은 절망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미국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에게 가장 큰 적 역시 낙심입니다. 하는 일이 마음만큼 안될 때, 나의 환경이 너무도 어려울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낙심은 반드시 우리들에게 찾아옵니다. 낙심이 오더라도 우린 싸워서 이겨야합니다.

 

우리 교회에 매달 선교비를 보내주어주는 교회 가운데 한 한인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의 김집사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한국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부인과 헤어진 후 사촌 누나가 장갑과 스카프 등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는 뉴욕으로 왔습니다. 누나의 가게를 맡아서 일을 하며 근 10년을 뉴욕에서 보냈는데요. 누나는 신분문제에 도움을 주지 않고 이분은 불체가 되었습니다. 몇 년전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뉴욕 운전면허가 다 끝나가는데 뉴욕에서는 더 이상 운전면허를 갱신할 수 없으니 타주에 가서 운전면허를 갱신하셔야한답니다. 저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워싱턴 주는 불체자에게도 운전면허증을 갱신하여 주었습니다. 거기서 운전면허 갱신을 도와주시는 분의 연락처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제가 전화하여 그 분을 알아본 뒤에 김집사님에게 연락하였습니다. 가서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는데요. 그것이 6년전인가 그렇습니다. 작년에 이 운전면허증도 다시 갱신해야합니다. 작년이 집사님의 인생에서 아마 최악의 해였을 겁니다. 가장 힘겨운 해였습니다. 도움을 줄 것 같은 누나는 신분문제에 도움을 주지 않아서 불체가 되고, 온갖 스트레스를 김집사님에게 다 쏟으니 결국 갑상선 항진증이 발생하였는데요. 그동안 사촌 누나 집의 방 한칸을 얻어서 살면서 10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주일에도 일을 해야하고, 운전기사가 필요하면 일을 하고, 가게에서 온갖 소리를 다 듣고, 결국 갑상선 항진증으로 약을 먹는데 잘 낫지도 않고 힘겨웠습니다. 그래도 절기만 되면 교회에 오시거나 오시지 못하면 사람을 시켜서라도 절기 헌금을 꼭 보내어 주셨습니다. 저도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병은 낫지 않고 사촌 누나의 가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고, 운전면허는 이제 끝나가고 그렇다고 한국에 나가는 것도 선뜻 마음이 안생기고 참 힘겨운 한해였습니다. 나이도 이제 육십이 훌쩍 너어버렸습니다. 어려움이 다 몰렸습니다. 저에게 워싱턴 운전면허 도움을 주시는 분 연락을 다시 해달라고 해서 연락하여 워싱턴 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엔 비행기를 타고 가셨는데 이번에는 직접 차를 몰고 가시겠답니다. 마음이 너무도 복잡한 겁니다. 차를 몰고 가며 생각도 하고 기도도 하시겠답니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참 안타깝습니다. 집사님, 떠나기 전 저에게 왔습니다.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계시니 믿고 가시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기도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매일 저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저에게 전화를 주셨는데요. 전화상으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애틀에 도착하고 나서 이틀 뒤부터는 연락이 없습니다. 4일인가 뒤부터 전화가 옵니다. 오는 길에 사택에 다시 들러 저녁을 드셨는데요. 왜 4일간 전화가 없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애틀에 도착하자 면허갱신을 도와주시던 분이 한인 민박집을 소개하여 주었답니다. 주인분을 만났는데 혼자 계신 여자 집사님입니다. 이분은 시민권자고 집도 있고 재정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 집사님이 김집사님에게 반한 겁니다. 사람이 점잖고 좋으니 반하여 여러 가지 물어보시더니 권사님이 직접 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4일을 보내고 일을 마치고 뉴욕으로 온 겁니다. 저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십니다. 제가 만나보니 권사님도 참 좋은 분이십니다. 신앙으로나 인품으로나 정말 좋으시더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시구나 할렐루야 했습니다. 전 적극적으로 도와드렸고 두분은 우리 교회에서 두 권사님이 증인으로 간단한 결혼식을 하시고 제가 호텔을 잡아드려서 그곳에서 하루를 지내시고 다음날 함께 식사하시고 다시 시애틀로 차를 몰고 가셨습니다. 지금은 항진증이 많이 낫고 곧 영주권이 나올 것 같습니다. 두분 참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십니다. 부인 집사님이 교회 재정담당 집사님 이신데 목사님께 말씀드려 우리 교회에 매달 선교헌금을 보냅니다.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걸 알고 믿는다면 우린 낙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더한 고난 가운데서도 이 믿음으로 낙심을 이겼습니다. 요셉과 같은 상황이 오고, 다윗과 같은 고난 가운데 빠져도 낙심은 안됩니다.

 

낙심이 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명쾌한 답을 내어주었는데 성도가 무너지고 좌절하는 건 자기를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고난 앞에 강자는 없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일이 오면 우린 약한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해야합니다. 외쳐야한다는 말입니다. 10이 정탐꾼들은 연약한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두려워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선포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무엇을 선포해야할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본문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린 그냥 두면 잘 속습니다. 누구에게 속습니다. 나 자신에게 속습니다. 조금 힘들면 포기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여기에 "속이지"라는 말은 헬라어로 "폴라나스데"라고 하는데 "이는 길을 잃게 하다" 또는 "진리에서 벗어나다" 또 "잘못되게 유인하다"라는 뜻입니다. 낙심을 우리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무너지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낙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엉뚱한 길로 가게 합니다. 그러니 낙심이 마음에 찾아와서 우리를 속이려고 하면 우린 우린 말씀을 선포해야합니다. 내가 심은대로, 나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고 선포해야합니다. 나의 기도대로, 믿음대로 될 것이다. 외쳐야합니다.

 

왜 외쳐야하는가? 이어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하였다. 여기에 "만홀히 여김"라는 말은 "바보취급을 당하다"라는 말인데요. 이는 하나님은 바보취급을 받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냥 우리가 아무것이나 던져 놓으면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떤 일이건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의 믿음에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합니다. 낙심의 상황이 오면 우린 온전한 믿음을 선포하고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합니다.

 

두 번째 선포할 것은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씀입니다.

9절에"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때가 이를 때까지 인내해야한다는 말이고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아야한다는 말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더라도 우린 선포해야합니다.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이라고 선포해야합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되는 또하나의 이유는 때를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다가 안보이는 분이 계십니다. 심방을 하면 이야기합니다. "아니 목사님 삼년을 교회에 나갔는데 아직도 응답이 없으면 없는 것 아니예요. 그래서 그만두었습니다." 본문에 "피곤하지 아니하면"이라고했다. 이는"지치지 아니하면"이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바울을 택하여 이방인의 선교사로 세우셨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인내하는 자라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베드로 낙심하여 세 번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여섯명의 제자를 데리고 갈릴리로 갑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아가겠다고 옛날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낙심한 채 배를 몰고 해안으로 오던 그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153마리의 큰 고기를 잡고서야 다시금 주님을 알아봅니다. 반면 바울은 예수를 믿고나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아도 그 길을 갑니다. 세 번 태장에 맞아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거둘 것이란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기에 낙심으로 살지 않습니다.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갈 때 그는 루스드라란 곳에 도착합니다. 바나바와 함께 간 1차 선교여행이었지만 바나바와 함께 있지 않았을 때에 바울은 안디옥과 이고니온이란 곳에서 바울을 벼루고 루스드라까지 온 유대인들의 무리에 의해 돌에 심하게 맞습니다. 바울의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짐승의 먹이로 성 밖에 던져버립니다. 전승에 의하면 숨이 돌아온 바울은 심하게 돌에 맞은 몸을 이끌고 루스드라 성의 디모데 집으로 갔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는 정성껏 바울을 치료합니다. 다음날 새벽 안개낀 루스드라 성에서 바울은 낙심하지 않고 1차 선교여행의 마지막 지점이 더베를 향해 다리를 절며 길을 떠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낙심하지 않고 가는 바울의 뒷모습이 어린 디모데에겐 너무도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거둔 것이 없는 것 같고 핍박만이 있는 것 같은데 바울은 때가 되면 거둘 것을 믿었습니다. 몇 년 뒤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하며 다시 루스드라에 들렸을 때에 당시 십대인 디모데에게 함께 가자고 하자 디모데는 주저없이 바울을 따라 나섭니다.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바울의 모습이 디모데에겐 너무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2차 선교여행을 갔을 때에 각처의 수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미국 생활이 마음만큼 편하지 못해도, 나의 상황이 생각보다 어려워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낙심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기생충과 같아서 떼어 버려야합니다. 가지고 있으면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심은대로 때가 되면 거둡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들의 소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믿어야합니다. 이 믿음이 분명하면 우린 낙심하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20190526] 박형기 목사님 설교-갈라디아서 6장 6-9 낙심하지 마라. njrp 2019.06.07 165
176 [20190519] 박형기 목사님 설교-마가복음 5장 35-43 "달리다굼" njrp 2019.06.01 493
175 [20190428]박형기 목사님 설교- 요한복음 12.12-19 유월절과 종려주일 njrp 2019.05.18 88
174 [20190421] 박형기 목사님 설교- 고린도전서 15.16-20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 njrp 2019.05.16 60
173 [20190414] 박형기 목사님 설교- 마가복음 11.1-11 -그러나 찾아오신 예수님 njrp 2019.05.16 17
172 [20190414] 박형기 목사님 설교- 마가복음 11.1-11 -그러나 찾아오신 예수님 동우아빠 2019.04.21 22
171 [20190331] 박형기 목사님 설교- 고린도후서 11.30 -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njrp 2019.04.21 29
170 [20190324] 박형기 목사님 설교-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njrp 2019.04.21 57
169 [20190317] 박형기 목사님 설교- 창세기 29.31-35 여호와를 찬송하라. njrp 2019.04.21 20
168 [20190310] 박형기 목사님 설교- 출애굽기 4.1-4 땅에 던지라 njrp 2019.04.21 14
167 [20190407] 박형기 목사님 설교- 요한복음 16.31-33 참된승리 동우아빠 2019.04.14 15
166 [20190331] 박형기 목사님 설교- 고린도후서 11.30 -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동우아빠 2019.04.07 34
165 [20190324] 박형기 목사님 설교-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동우아빠 2019.03.31 32
164 [20190317] 박형기 목사님 설교- 창세기 29.31-35 여호와를 찬송하라. 동우아빠 2019.03.31 28
163 [20190310] 박형기 목사님 설교- 출애굽기 4.1-4 땅에 던지라 동우아빠 2019.03.31 24
162 [20190303] 박형기 목사님 설교 - 빌립보서 3.12-14 푯대를 향하여 njrp 2019.03.27 21
161 [20190224] 박형기 목사님 설교 - 마태복음 11.12 천국은 njrp 2019.03.27 82
160 [20190303] 박형기 목사님 설교 - 빌립보서 3.12-14 푯대를 향하여 동우아빠 2019.03.10 35
159 [20190224] 박형기 목사님 설교 - 마태복음 11.12 천국은 동우아빠 2019.03.03 39
158 [20190217] 박형기 목사님 설교 - 시편 99.1-9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njrp 2019.03.03 39
위로